진료 과목
감정홍조로 오시는 분들 말씀이 거의 똑같으세요. "누가 제 이름만 불러도 얼굴이 확 달아올라요. 그렇게 긴장한 것도 아닌데요."
회의에서 발표 차례가 오는 순간, 카페에서 주문하는 순간, 엘리베이터에 둘만 남은 순간. 얼굴부터 뜨거워집니다. 붉어졌다는 걸 본인이 아는 순간 더 붉어지고요. 이분들 고충은 본인만 알아요.
대부분 성격 탓으로 알고 삽니다. 소심해서, 수줍음이 많아서. 그런데 수줍은 사람이 다 홍조가 있지는 않거든요. 얼굴 혈관을 열고 닫는 건 자율신경입니다. 몸이 알아서 켜고 끄는 신경이에요. 마음이 아니라 몸이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얼굴이 고장 난 게 아닙니다. 얼굴은 경보가 울리는 자리일 뿐이고, 경보기가 예민해진 겁니다.
집에 화재경보기가 있다고 해 보죠. 불이 나면 울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 경보기가 고장 나면 라면 끓이는 김에도 울립니다. 이름이 불리는 게 불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몸은 큰일 난 것처럼 심장을 뛰게 하고 얼굴 혈관을 열어 버립니다.
지금까지 받으신 치료는 경보 소리를 줄이는 치료입니다. 인데놀은 심장을 덜 뛰게 하고, 항불안제는 놀라는 마음을 눌러 주고, 레이저는 넓어진 혈관을 정리합니다. 먹는 동안, 받은 직후는 편합니다. 그런데 경보기는 그대로라 끊으면 다시 울립니다.
경보기를 예민하게 만든 건 몸의 긴장입니다. 홍조로 오시는 분들께 여쭤보면 잠이 얕고, 자주 체하고, 어깨가 굳고, 손발이 찬 분이 많습니다. 이 긴장이 몇 년씩 쌓인 몸에서는 별일 아닌 자극에도 경보가 울립니다.
수줍은 성격이라서 생긴 병이 아닙니다.
얼굴이 먼저 달아오르니까 사람 앞이 두려워지는 겁니다. 순서가 반대예요.
그래서 "자신감을 가지세요"라는 말로는 낫지 않습니다.
얼굴이 붉어지는 병이 감정홍조만은 아닙니다. 아래 넷은 먼저 갈라야 합니다.
홍조가 생긴 지 얼마 안 됐다면 피부과와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먼저 받아 보세요. 초기에는 그 길이 가장 빠릅니다. 저는 그 길을 다 가 보고도 되돌아온 분들을 위해 시간을 씁니다.
인데놀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면접 하루, 발표 한 시간이라면 인데놀이 급한 불을 끕니다. 다만 역할이 거기까지입니다. 원래 혈압약이라 매일 먹기에는 부담이 있고, 끊으면 경보기는 그대로 남습니다.
교감신경절제술도 마찬가지입니다. 경보기 선을 끊는 수술이라 얼굴은 덜 붉어집니다. 다만 한 번 끊은 선은 되돌릴 수 없고, 얼굴 대신 등이나 배에서 땀이 쏟아지는 분이 있습니다. 되돌릴 수 없는 방법은 맨 마지막에 두시길 권합니다.
저는 경보기를 손봅니다. 얼굴 열을 내리는 약을 드리는 게 아니라, 경보기를 예민하게 만든 몸의 긴장을 푸는 겁니다. 그래서 첫 진료에 1시간을 씁니다. 언제부터 붉어졌는지보다 잠은 어떤지, 소화는 되는지, 소변은 잦은지를 더 오래 묻습니다.
목표는 절대 붉어지지 않는 얼굴이 아닙니다. 붉어져도 금방 가라앉고, 이름이 불려도 그냥 대답하는 하루입니다. 보통 6~8개월을 잡고, 기간과 비용은 첫 진료 때 말씀드립니다. 칼럼과 영상을 먼저 보시고 오셔도 늦지 않습니다.
회의에서 발표를 시작하는 순간, 처음 보는 사람과 인사를 나눌 때, 상대방과 대화를 나눌때, 남들은 멀쩡한데 나만 빨개지는 것 같고, 그게 또 티가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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